중국 근현대사에는 가장 큰 두 세력으로 국민당과 공산당이 존재한다. 이들 각각은 현재 중화민국(대만)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중심이 되는 정치 세력이다. 먼저 두 당의 창립 기원의 역사를 보자면 중국 국민당은 1919년 10월 쑨원을 중심으로 창당되었고, 중국 공산당은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지원하는 기관, 코민테른의 지도 아래 1921년 7월 상해에서 창당되었다.
우선 초창기에는 역사가 오래된 국민당이 비교적 우위에 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어떤 점들이 유리 했냐면
국민당은 우원 여러 가지 종류의 자원을 독점하였어고, 국제적 지원도 적극적으로 받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병력의 수 마저도 공산당과 비교하였을 때 수많은 병력과 장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유리한 상황에서 현재의 중은 왜? 국민당이 아닌 공산당의 주도하의 중국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1. 독재와 부패: 일당독재(쑨원의 삼서론三序論),
쑨원은 '헌법의 통치'로 가기 전에, 먼저 '군법의 통치'와 '약법의 통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명 직후에는 반혁명분자를 완전히 제어하기 위해 군정부가 지도하는 군사독재체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가 안정되어도 중국에 바로 헌정을 도입하기에는 인민의 정치수준이 낮기 때문에 국민당이 국민을 계도하고 훈련시키는 기간이 어느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과도기에는 헌법 대신 국민당이 정한 '약법'이 존재하며, 국민당은 사실상 의회의 견제를 받지 않은 일당독재를 실행하는 상황이었기에 많은 부패 현상이 일어났었다.
2.재정정책 실패로 인해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었다.
1937년에는 100이었다면 →1945년에는 201,531→1948년에는 287,000,000까지 상승하였고, 그만큼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원망은 커질 수 밖에 없었다.
3.중-일 전쟁
‘南京 10년‘의 성과 파괴(∵중일전쟁)
이로 인해 국민당(국민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신임이 극심해 졌고 이로 인해 차라리 공산당을 지지하자는 세력들이 늘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
쉽게 정리하자면:일본의 침략 -)국내의 경제적 성과 파괴, 공산당 제거 실패-) 국민적 신뢰 추락 결과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졌기에 일어날수 있었던 일들이라고 본다.
하지만 쿵짝이 잘맞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따른 공산당의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요인을 다음편에서 찾아보려고 한다.